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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의 정지훈, ⟪거의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혁명 정지훈 지음 메디치미디어 2020.11.30. 발간 480쪽

 

코로나 발생 후 급변하는 IT 분야를 보고 나는 당황했다. 때때로 가족과 화상통화를 할 때 사용하던 영상매체가 강의를 하기 위해서 또는 듣기 위해서 필수매체 내가 하기 싫다고 해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를 벗어났다.

지금까지 인터넷 세상에서 내가 필요한 만큼은 어떻게든 알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내가 쓰지 않는 앱(예를 들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은 내가 쓰기 싫어서 쓰지 않았다고 해서 쓰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발생하고 갑자기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나의 컴퓨터와 인터넷 지식에 버퍼링이 걸렸다.

올해 초 8년간 사용했던 내 삼성 노트북을 애플의 아이맥으로 바꿨다. 삼성의 노트북 컴퓨터 이전에도 나는 삼성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그래서 내가 쓴 프로그램은 모두 MS(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었다. 하지만 아이맥으로 컴퓨터를 바꾼 뒤 애플의 OS(운영체계)부터 사무실 문서 파일까지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했다. 때로는 사용법을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애플 유저들의 블로그를 읽으면서 하나하나 외웠다. 그리고 휴대전화, 패드, 노트북, 컴퓨터를 모두 애플에서 사용하는 사용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의 사용 환경에 적지 않은 충격도 받았다. 필요한 건 나한테 맞는 걸 골라 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에게 모든 IT(정보통신) 기기를 애플 제품으로 통일해 쓰는 애플 마니아들의 생태를 보면서 애플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나는 컴퓨터와 인터넷 등 IT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마침 아릴레오북스 코너에서 이 책 《거의 모든 IT 역사》의 저자를 초청해 저자와 직접 토론하는 영상을 보고 무척 기뻤다(https://www.youtube.com/watch?v=tc7pyc3k1uI&list=PLtAbTqMyJif_BDVUcR5yyQLSmWXb87hxE)). 다음 회에는 아직 방영되지 않았지만 우선 첫 회 영상을 반복해서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대략적인 내용을 숙지한 뒤 e북을 사서 읽었다.

내가 컴퓨터를 처음 배운 것은 대학 2학년 1학기 때였다. <컴퓨터 개론>이라는 수업에서 아마 전공필수가 아닐까 싶다. 당시 처음으로 DOS라는 단어와 포트란이라는 단어를 들어봤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컴퓨터 학원에 다니던 학과 친구가 한 명 있어 쉬는 시간이 되면 동급생들이 아는 것을 설명해 주곤 했지만 나에게는 모두 외계어 같았다.

나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뇌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중년에 와서야 알게 됐는데, 이런 것이 왜 만들어졌는지 철학적 역사적 배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컴퓨터라는 기계가 가진 기능 위주로 배웠기 때문에 작동 원리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신기술이 어떤 비전을 갖고 등장했는지를 미리 알았다면 컴퓨터 수업이 그리 재미없었을 것이다. 수업시간에는 단지 기술적 언어와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만 배웠기 때문에 왜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가르치는 사람도 비전까지 이해하고 가르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 문자가 아닌 이미지 위주의 월드와이드웹 인터넷 세계로 바뀌면서 나도 인터넷을 활용하는 사람이 됐지만.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학창시절 수업중에 듣던 컴퓨터와 관련 용어가 어떤 역사적 배경과 어떤 철학을 배경으로 나왔는지 설명되어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IT의 인문학적 배경을 이해하고 읽어 보면, 지금까지의 컴퓨터의 전개 과정이 대충 머리에 정리되었다. 일찍이 들은 이름, 예를 들어 DOS, 포트런, 네스케이프, 네비게이터, 야후, 윈도 등 IT를 중심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세상에서 각축전이었던 회사의 수많은 부침 이야기 가운데 내가 쓰거나 적어도 알고 있던 이름이 출신지와 존재 이유를 소개한다.

내가 (아마 내 세대 모두가 그랬겠지만) 단순히 첨단 기술인 줄 알고 접근해 온 모든 IT 속의 기술들이 인간의 더 나은 삶이라는 비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임을 알고는 다시 보인다. 내게는 필요 없는 기술이 왜 이렇게 빨리 새로워져 나를 성가시게 하거나 무섭게 하느냐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완화됐다. 그런데도 이 신기술을 놓고 서로 가로채고 빼앗으며 전쟁을 벌이는 IT기업들의 힘겨운 경쟁을 보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다. 지금도 충분한데 너무 달리는 것 아니냐는 보수적 마인드도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AI(인공지능)와 증강현실, 우리 뇌에 칩을 삽입하는 기술 등에 대해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이라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수료증이 한 장 떠올랐다. 윈도가 보급되고 MS오피스가 직장에서 상용화된 시대다. 지금 생각하면 이걸 3개월이나 돈 주고 학원 다녔나 싶은데 그때는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IT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내 인생도 이 IT의 역사 과정을 피해갈 수 없었다. 오랜 MS시대를 거쳐 지금은 애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안드로이드는 내 인생의 일부분이고 구글은 하루에도 12번씩 드나드는 검색엔진이 됐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쇼핑 생활을 접어버린 강력한 온라인 쇼핑 사이트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은 테슬라와 증강현실(AR)이지만, 이것도 머지 않아 내 인생에 들어오지 않을까. 가능한 한 그 시기가 늦게 왔으면 좋겠는데, 변화가 너무 빠르다.